석가탑과 다보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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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533회 작성일 18-04-27 16:44본문
사찰에서 탑을 조성할 때에는 보통 대웅전 앞에 하나 또는 둘을 세우는데 하나일 때는 일탑식, 둘일 때는 쌍탑식이라고 한다. 보통 산지 사찰에는 탑을 하나 모시고, 평지 사찰에는 둘을 모신다. 예를 들어 불국사의 경우는 쌍탑식 평지 가람이라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쌍탑식 가람의 두 탑은 그 형태가 서로 같다. 이 경우에 탑은 진신사리 또는 법신사리를 모신 영묘(靈廟)로서의 의미 이상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불국사의 경우는 두 탑의 형태부터가 서로 다르다. 석가탑은 일반적인 전형(典型)을 따르고 있고, 다보탑은 장식성이 강한 이형탑(異形塔)의 형태이다. 그 배경에는 사리 봉안의 차원을 뛰어넘는 불국(佛國)의 상징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렇다면 이 두 탑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상징하고 있는가? 그 의문을 풀기 위하여 우리는 두 탑의 형태와 위치, 그리고 이 탑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공간의 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불국사의 주요 불전들은 높은 축대 위에 세워져 있다. 축대 아래의 평지에서 청운교와 백운교 위를 지나는 돌계단을 올라 자하문(紫霞門)을 통과하면 대웅전 앞뜰이 전개된다. 대웅전을 향해 서서 보면 왼쪽(서쪽)에 석가탑이, 오른쪽(동쪽)에 다보탑이 있다. 석가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남북국시대)의 석탑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다보탑은 이와 달리 독특한 형식을 보인다.
이 두 탑은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석가여래 상주설법”(釋迦如來 常住說法)과 “다보여래 상주증명”(多寶如來 常住證明)의 장면을 상징한 것이다. 말하자면 석가탑은 『묘법연화경』을 설하고 있는 석가여래를 상징하고, 다보탑은 그의 설법 내용이 진실임을 증명하고 찬탄하는 다보여래를 상징한다.
이 두 탑과 관련하여 『묘법연화경』 「견보탑품」(見寶塔品)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착하고 착하시도다. 석가모니 세존이시여. 평등한 큰 지혜로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며 부처를 옹호하는 『묘법연화경』을 많은 중생들을 위하여 설하심이 이러하시도다. 석가 세존께서 하시는 말씀은 다 진실이로다.
그때 사부대중은 큰 보배의 탑이 머물러 있는 곳을 보았고, 탑 가운데서 나오는 음성을 듣고 모두 법의 기쁨을 얻었다. 청중들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이상하게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공경하며 합장하고 한쪽에 물러나 머물었다. 그때 보살마하살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대요설(大樂說)이었다. 일체 세간의 하늘 인간, 아수라들이 마음에 의심하는 것을 알고 대요설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이 보탑(寶塔)이 땅에서 솟아나와 있으며, 또 그 가운데서 이런 음성이 나오나이까?”
이때 부처님께서는 대요설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이 보탑 가운데는 여래의 전신(前身)이 계시니 저 먼 과거 동방으로 한량없는 천만억의 아승기1) 세계를 지나서 나라가 있었느니라. 나라 이름은 보정(寶淨)이요, 그곳에 부처님이 계시었으니 이름이 다보이니라. 그 부처님께서 보살도를 행할 때 큰 서원을 세우기를 ‘만일 내가 부처를 이루어 멸도한 후에 시방 국토에서 『묘법연화경』을 말하는 곳이 있으면, 이 경을 듣기 위하여 나의 탑묘가 그 앞에 솟아나와 그것을 증명하고 거룩하다고 찬탄하리라’고 하였느니라.”
다보여래는 동방보정세계(東方寶淨世界)의 교주이다. 다보여래는 석가모니 이전의 과거불이며, 영원히 살아 있는 본체로서의 부처인 법신불이다. 보살로 있을 때에 “내가 성불하여 멸도한 뒤에 시방세계에서 『묘법연화경』을 설하는 곳에는 나의 보탑이 솟아나와 그 설법을 증명하리라” 하고 서원하였다. 과연 석가여래가 영산(靈山)에서 『묘법연화경』을 설할 때 땅 속에서 다보여래의 탑이 솟아났고, 그 탑 가운데서 소리가 나와 석가여래의 설법이 참이라고 증명하였다.
『묘법연화경』 「보탑품」에서는 다보탑의 모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때 부처님 앞에는 칠보의 탑이 있었는데, 그 높이가 500유순이며 사방 길이가 250유순이었다. 땅에서 솟아나서 공중에 머물고 있으며 가지가지의 보물로 장엄하였으니 5천의 난간과 천만이나 되는 방과 수없는 당번(幢幡)으로 장엄하게 꾸미었으며, 보배 영락을 드리우고 탑 위에는 만억의 보배 방울을 달았으며, 사면에서는 다마라발전단2)의 향기가 세계에 두루 차고, 여러 번개(幡蓋)는 금·은·유리·차거3)·마노4)·진주·매괴5) 등의 일곱 가지 보배로 이루어져 그 높이가 사천왕의 궁궐까지 이르렀다.
불국사에서 다보탑을 특별히 대웅전 마당 동쪽에 배치한 것은 다보여래가 동방보정세계의 교주이기 때문이다. 한편 다보탑의 모양을 조성함에 있어서 『묘법연화경』의 내용을 근거로 삼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경전에서 “5천의 난간과 천만이나 되는 방과 수없는 당번으로 장엄하게 꾸미었으며······”라고 하였는데, 다보탑의 구조는 이 내용과 깊은 관련이 있다.
현재 다보탑의 계단 아래쪽에는 유구(遺構)로 보이는 돌기둥만 남아 있지만, 원래 네 방향에 조성되된 계단에는 난간이 있었다. 그리고 1층 지붕돌에 해당하는 얇은 석판 위에 두 줄로 된 난간이 있고, 그 위에도 팔각형의 난간이 둘러쳐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난간은 3층에 불과하지만 이것은 경전에서 말한 5천의 난간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계단 위쪽 상대 갑석 위의 네 귀와 중앙에 각각 하나씩, 그러니까 다섯 개의 기둥이 있어 얼마간의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이 공간은 다보여래의 소리가 들려나온 곳을 상징한 것으로 여겨지며, 아울러 천만의 방을 상징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 이유는 네 귀퉁이의 기둥머리 모양이 마치 목조 건물에서 지붕을 받치기 위해 짜올린 두공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버선 모양으로 된 여덟 개의 기둥 위에 올려진 팔각의 석판은 번개(幡蓋)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석가여래를 상징하는 석가탑 주위에는 여덟 송이의 연꽃을 조각한 탑구(塔區)가 있다. 학자에 따라서 이것을 팔방금강좌(八方金剛座) 또는 팔보살의 정좌라고 하며, 석탑에 직접 조각하는 팔부중을 지면에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묘법연화경』 「견보탑품」에서 석가여래가 불법을 설할 때 시방의 모든 부처들이 모여든 상황을 묘사한 부분과 관련지어 다른 해석을 해볼 수도 있다.
그때 동방 석가여래의 분신인, 백천만억 나유타항하의 모래 수 같은 국토에 있던 여러 부처님들이 각각 설법을 들으려고 모였는데, 이와 같이 차례차례로 팔방에 앉으시니, 그때 모든 방위의 4백만억 나유타 국토에는 여러 부처님이 가득 차게 되었다.
이와 관련시켜 생각해보면 석가탑 주변 팔방에 장식된 여덟 송이의 연꽃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하여 팔방에 앉은 여러 부처님의 연화좌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석가탑과 다보탑이 동서에서 마주 대하고 있는 불국사 대웅전 앞뜰은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함께 임하고 있는 영산도량(靈山道場)이 된다. 영산정토의 법회는 엄숙하여 그 모임이 아직까지도 흩어지지 않고 석가여래의 설법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여 ‘영산일회연미산’(靈山一會然未散)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불국사 대웅전 앞뜰은 지금도 석가여래의 설법과 다보여래의 증명이 계속되고 있는 영산법회의 장소가 된다.
이와 같은 유래나 상징 의미가 두 탑과 결부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술성 높은 석탑, 또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형탑 정도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이 두 탑은 『묘법연화경』의 내용과 결합하여 상징성을 드러냄으로써 그 종교적 의미가 비로소 현실로 연장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문화재관리국에서는 석가탑의 공식 명칭을 ‘불국사 삼층석탑’이라고 정하였다. 이 명칭은 단순히 소재지와 탑의 외형 구조를 기준으로 지어진 이름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화를 잃어버리고 현실의 모든 것을 표면적으로만 바라보는 현대인